어쩌다 웃으면 눈이 눈썹 안으로 들었다. 말을 할 땐 말들이 튀쳐 나오지 않고 입에서 궁굴러서 나왔다. 우리 반이었는데 키는 작았고 수학을 잘했다. 졸업 후에는 선생이 되었다.
선생이 된 몇 년 후, 전두환이 대공을 명패 삼아 나라를 엎치락 뒤치락 할 때, 심포 앞 퍼런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선생 아버지가 영문도 없이 사라지고 식구들이 실종신고를 하고 몇일 후엔 대여섯 명의 형사들이 오고 그 형사들이 그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그 집에서 잠도 자고 다음날 사촌 둘을 차에 태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82년 여름이었다. 욱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는 세상이었다. 보안사나 안기부가 간첩단을 일망타진하면 수 천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포상금 뿐 아니라 계장은 과장이 되고 과장은 부장이 되었다. 남이사 죽건 말건 간첩단 하나를 조작하면 부귀와 영화가 함께 올라왔다. 86년 선생 아버지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간첩으로 사형을 받았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갔다. 간첩이 김일성 만세가 아니라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간 것이다. 최후 면담을 갔던 문장식 목사의 증언이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 간 두 사촌 중 한 사촌은 조카는 그해 구치소에서 죽었다.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한 사촌은 15년을 선고 받고 9년을 복역하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났는데 풀려 난 지 4개월 만에 창고에서 목을 달았다. 간첩단 조작으로 결딴난 가족이 어디 이 집 뿐이겠는가. 그집 둘째 아들, 말하자면 선생 동생은 그 여름 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사촌을 데리고 간 형사가 이근안 그 놈이란 걸 TV뉴스를 보고 알았다더라. 생체실험 같이 생긴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닭 잡듯 이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국가에 의해서 한 가족이 멸문을 당한 것이다.
아버지는 까맣게 멍울이 되었고 간첩 아들이 된 선생은 해마다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간첩 아들이 반공을 가르칠 순 없었을 것이다. 살아야 하는 게 선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7년 재심에서 아버지와 사촌 둘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두 죽고 난 후 무죄를 받은 지도 모르고 무죄를 받았다. 당시 김제 가족간첩단 조작사건 이영범 판사는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피디: 만약 오판을 하셨다면 저희가,
이영범: 재심 판결났으면 됐지, 뭘 그걸 응?
피디: 가족이 멸문이 됐는데
이영범: 나가세요. 그 무슨… 재판이 잘못됐으면 파기해서 무죄하면 되는 것이지. 아니 재심이 됐으면 재심에서 무죄났으면 그걸로 됐죠. 나한테 무슨..
선생은 은퇴 후 아버지 무죄 선고를 들고 벌초하러 가는데 가다가 담배 생각이 났던지, 아니면 아버지께 드리려고 했던지
담배 사러 마을로 가다가 갈대밭에서 길을 잃고 세상을 졌다. 담배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던 담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만경고등학교 교정에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신을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신을 믿느냐고 ...바람을 본 적은 없는데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본 적은 없는데 분명히 할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안다고 했다.
잘 가시게...우리반 최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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