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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선화

사진 박용기

 

그 무슨 서글픈 오후였을까

히말리아시다가 짙어가던 오월. 책가방은 교실에 버려둔 채, 시장 구석방에서 친구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갈 곳이라곤 수원지로 가는 길. 미적분을 나는 모르겠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알 것 같은 모르는 길이었다. 반을 반절로 쪼개 반 전체가 축구를 하던 오후 보충시간, 그게, 그게 아닌 것이 미적분을 모르거든 공이라도 빵빵 날릴 수 있으면 이렇게까지 상했을까. 노란 꽃잎이 눈부시다. 길목은 현란하고 내려앉는 오후가 어지럽다. 수면을 튕겨 나온 햇살은 수천수만 날개로 퍼득이고 호수 건너 용지동 푸른 숲은 울울창창 등등하건만 나라고 하는 남잔 그토록 모자란 나무였을까. 봄은 자지러지고 아무도 모르는 씨눈 하나 무장무장 가슴 속에 차오르는데 어쩌자고 이토록 열등한 오리였을까. 거뭇한 시멘트 바닥 위로 해그늘이 내려앉고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언..  제 노래는 겹고 제풀에 젖은 우리는 차례로 첨벙 첨벙 퍼런 심연으로 뛰어내렸다.  깊고 깊었다. 깊어서 별똥들이 지는 밤하늘 같았다. 열패감은 자지러들고 부르르 오월을 털고 오는 길은 전등불이 올라오는 초저녁이었다. 천방지축 같은 천방지축이었다. 나는 노랑했고 오월의 슬픔은 삭아서 발효된 지 이미 오래. 이제 수선화 노래를 불러 당신께 드리리. 당신께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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